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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교양과 성(Sex) (8)무례한 기독교 RICHARD J. MOUW, UNCOMMONDECENCY CHRISTIAN CIVILITY IN AN UNCIVIL WORLD

신학

by Nomad seeking Freedom 2024. 1. 15.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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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시민 교양과 성(Sex)

 

 사안에 따라서 시민교양을 지키는 것이 좀 더 어려울 수도 있고 쉬울 수도 있다. 성적인 선택과 관련하여 낙태, 동성애, 난잡한 성행위를 택하는 자에게 어떻게 공손한 태도를 취할 수 있겠는가? 이웃에 새로 이사 온 이슬람 교도는 어떻게 대해야 할까? 또 악에 물들지 않으면서 텔레비전 산업에 종사하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은가?

 

성의 중요성

 복음주의 개신교도들의 사회적 관심사는 성과 재생산 문제에 너무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 같다. 우리는 인종 차별이나 경제적 억압 혹은 환경 파괴 등에 대해서는 그만한 관심이 없다는 인상을 풍긴다. 하지만 성 문제에 대한 집중된 관심이 잘못되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성은 타고난 우리 본성의 아주 중요한 측면이다. 우리 인간은 복잡하고도 취약한 존재이며, 이 복잡성과 취약성이 성의 영역에서보다 더 분명하게 드러나는 곳은 없다.

 

'정상적인' 성?

 우리는 사실 자신의 성적 생활을 아주 '정상적' 이라고 느끼지 않는다. 그 이유를 성경이 말해 준다. 우리는 타락한 시대에 비정상적인 인간 상태로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 본성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우리의 성이 그런 비정상적 상태를 독특한 방식으로 보여 주는 것이다. 우리는 깨지고 비뚤어진 자들이다. 그리스도인은 이 점을 인정하며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이런 체험을 통해 다른 성적인 죄인들에게도 우리와 함께 십자가로 나아가자는 메시지를 전할 수 있다.

 

성적 교양을 위한 지침

 성적으로 자기 비판적인 자세를 취하라. 우리는 대부분 자기가 성적으로 '정상적인' 모델리아고 내세울 만한 권리가 없는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우리 자신의 성적인 죄를 주의 깊게 주시하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주 위험한 발상이 아닌가?  물론 그것은 정말 위험한 일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에게 그런 문제에 대해 우려하지 말라고 권고하는 것도 위험하기는 마찬가지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의 성에 대해 정직한 관점을 갖는 것이다.

지나친 단순화를 피하라. 유명한 근본주의 설교자가 동성애에 대해 다룬 것이 한 예인데 바로 이런 식이다. "제가 가진 성경은 하나님이 아담과 스티브가 아니라, 아담과 하와를 창조했다고 말한다." 나도 이 설교자와 같이, 창조주께서 이성간의 결혼 관계 안에서 성적인 친밀함을 나누도록 의도하셨다고 믿는다. 그러나 이 심오한 가르침을 빈정대는 어투로 표현해서는 얻을 것이 것의 없다.

 

우리가 집합적으로 지은 성적인 죄를 기억하라.

우리 그리스도인은 도덕적 기억 상실증이라는 전염병을 앓고 있는 것 같다. 기독교 지도자들은 "분리하지만 평등"(separate but equal) 정책을 지지하면서, 마치 기독교 공동체가 언제나 그런 관점을 가지고 있었던 것처럼 말한다. 그러나 사실은 여자가 남자보다 열등한 존재로 인식되어 온 것이 관행이었다. 그리스도인이 동성애와 페미니즘 같은 주제를 논할 때에는 과거에 우리가 범한 행위와 태도에 대해 유감과 회개의 정신을 지녀야 한다.

 

비합리적인 두려움을 없애라.

때로 우리의 성적 비교양은 비합리성에 기초하고 있다. 물론 어떤 특정한 성생활에 대한 비판을 모두 비합리적인 것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동의하지 않는 신념 및 행위자체와 그런 식으로 믿고 행동하는 사람을 서로 구별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이견에 대해 아주 분명한 태도를 지니되 동성애자에게 비합리적인 반응을 보여서는 안된다.

 

성적인 감정 이입을 개발하라.

몇 년 전에 어떤 교회의 '에이즈 미사'에 참석한 적이 있다. 나는 그 회중 대다수가 남부 캘리포니아에 있는 동성애 공동체에 속한 사람일 것이라 생각하고, 슬그머니 뒷좌석에 앉아 관심 있는 방관자의 입장에서 예배를 참관할 생각이었다. 그 미사는 감동적인 경험이었다. 나는 아주 중요한 교훈을 상기하게 되었다. 즉 이 사람들도 나처럼 하나님의 형상으로 사랑스럽게 빚어진 존재라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나는 성적 가치관이 나와 아주 다른 사람들에 대한 새로운 감정 이입을 체험하게 되었다.

 

공적 영역에서의 성

 교회가 성적 행위를 그 징계 대상에 포함시킨 것은 바른 정책이다. 그런데 기독교 공동체는 성에 대한 성경의 규범을 인정하지 않는 이들에 대해서는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는가? 자신의 죄된 성적 충동을 따라, 갈 데까지 가려는 자들의 행위를 규제하는 법을 제정하는 것은 어떨까? 나는 비그리스도인을 강요하여 기독교적 성 규범을 따르게 하는 법을 제정하는 것에 대해서는 무척 신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성경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자발적인 순종을 드리도록 요구한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었을 때, 하나님은 그들을 멸망시키지도 않으셨고 그들이 억지로 창조주의 뜻을 순종하도록 강요하지 않으셨다. 결국 하나님을 반역한 피조물은 자기가 자유로이 택한 길의 논리적 결과가 극심한 고독과 소외임을 뼈저리게 직면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하나님도 인간에게 바른 행동을 강요하지 않으셨는데, 그리스도인이 강제로 그렇게 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다른 이들이 죄를 짓는 것을 막을 권리는 우리에게 없다. 하지만 그들이 자신의 왜곡된 목적을 달성하기 쉽도록 만들 책임도 우리에게는 없다. 그리스도인은 다같이 협력하여 현대 사회의 반역적인 우상 숭배와 혼란에 대해 건강한 대안을 제시할 수 있다. 우리가 다른 이들이 자기가 선호하는 생활 방식을 추구할 수 있도록 기꺼이 허용하는 대신 우리에게도 동일한 기회를 달라고 더욱 강력하게 요구해야 한다.

 

성적 정직성 도모하기

 성 혁명이 안고 있는 주제들 가운데 우리 그리스도인이 사장시키지 말아야 할 것이 하나 있는데 바로 성적 정직성(sexual honesty)이다. 신자이든 아니든 누구도 이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성적 정직성은 성이 인간의 삶에서 하는 역할에 대해 교만하지 않은 자세로 참을성 있게 논의하려는 마음가짐을 뜻한다고 주장해야 한다. 성경적 관점의 핵심은 상대방에 대해 정중하고 자애로운 성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성적 표준의 측면에서 의견을 달리하는 사람들에게 정중하고 온화한 자세로 성경적 견해를 제시하는 것이 중요하다.

 

인생 여정에 필요한 은혜

 성적 교양을 기르는 데는 분명 위험이 따른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성적 문제에 관해 교만할 이유가 없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를 그분이 원하시는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일하고 계신다. 우리는 자신의 연약함을 시인하고 하나님의 은혜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존재임을 정직하게 인정할 필요가 있다.

 

Comment_ 제7장에서는 다른 방향에서의 시민교양에 대해서 지적하고 있는데 그것은 인간모두에게 적용되어지는 '성'에 대한 문제이다. 성에 대해 집착하는 그리스도인에 대해 지적하면서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를 말한다. 1성적으로 자기 비판적인 자세를 취하라. 2 지나친 단순화를 피하라. 3 우리가 집합적으로 지은 성적인 죄를 기억하라. 4 비합리적인 두려움을 없애라. 5 성적인 감정 이입을 개발하라. 다섯 가지 중에서 나에게도 적용되어져야 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다시 한번 죄인 됨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는 것 같다. 

 7장에서 중요한 것은 이 '성'에 대해서 그리스도인들이 비그리스도인들에게 어떻게 다가가며 어떻게 그들에게 권면할 것인지가 주된 관점이다. 그것은 마치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가 마땅히 순종해야 되는 부분에서 강조하지 않으신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도 아닌데 그들에게 이래라 저래라 할 수는 없는 문제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우리가 감정 이입을 통해 그들의 생각을 들어주는 만큼 우리도 단합하여서 그들에게 정당하게 우리의 말을 들어줄 것을 요청하는 방향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이런 방법은 필요하고 교회가 사회 안에서 충분히 영향력을 발휘해야한다고 생각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빛과 소금으로 부르신 이유 때문이다. 교회가 마땅히 해야 하는 부분인데 왠지 모르게 우리들의 교회는 단합보다는 개별적인 교회의 여러 이유로 인해 단합하지 못하고 사회가운데 힘을 내지 못하는 모습을 많이 본다. 이것은 천주교(로마 가톨릭)와 비교하면 너무나 차이나는 부분인 것이다. 

 이 부분에서는 너무 이상적인 것만 추구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부분을 지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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