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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 카이퍼, 테레사 수녀를 만나다 (13)무례한 기독교 RICHARD J. MOUW, UNCOMMONDECENCY CHRISTIAN CIVILITY IN AN UNCIVIL WORLD

신학

by Nomad seeking Freedom 2024. 1. 21. 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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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아브라함 카이퍼, 테레사 수녀를 만나다

아브라함 카이퍼, 테레사 수녀

승리주의의 문제

 앞에 두 장에서는 시민교양의 경계선에 대해 탐구했다. 성경의 하나님은 그저 '좋은 분'으로만 규정될 수 없는 존재다. 이 우주의 짜임새 자체에 신념 - 옳고 그름의 표준에 대한 깊은 헌신 - 이 깊이 스며들어 있는 것은 바로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시민교양을 배운다는 것은 반항적인 피조물을 참을성 있게 다루시는 하나님을 본받는 것이다. 마지막 두 장에서는 승리와 인내라는 두 가지 주제를 다루고자 한다.

 

예수님의 통치

 최근에 누군가가 나에게 어떤 그리스도인 사상가가 내 사회 정치적 사상에 가장 큰 영향을 주었는지 물었다. 나는 잠시도 망설이지 않고 아브라함 카이퍼라고 대답했다. 그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통치를 밝히 보이는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내 것이다!"

 카이퍼가 우주의 모든 것이 자기에게 속해 있다고 외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묘사했을 때, 그는 주님을 마치 자기 중심적인 지주인 양 시사한 것이 아니다. 예수님이 "내 것이다!"라고 외치시는 것은, 창조 세계를 향한 사랑이 너무나 깊어서 그 세계를 죄로부터 구하기 위해서라면 고난과 죽음까지도 마다하지 않을 심정에서 나오는 것임을 카이퍼는 알고 있었다.

 

제국주의적 제자도

 카이퍼의 신학은 철저한 정통주의였고, 그는 따뜻한 복음주의 신앙도 갖고 있었다. 동시에 그는 창조 세계 전체를 다스리시는 그리스도의 우주적 주권을 강하게 의식하고 있었으며, 이런 관점이 자신의 사회적 행동주의에 어떤 함의를 갖고 있는지도 정립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카이퍼와 같은 관점에서 종종 나오는 한 가지 흐름에 대해 우려하는 바다. 그것은 이런 식으로 추론하는 경향이 있다. 즉 그리스도께서 창조 세계의 모든 영역을 소유하고 계신 이상 우리의 사명은 앞으로 전진해서 그분의 이름으로 모든 것을 정복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나에게 특히 거슬리는 것은 기독교의 승리주의 정신이다.

 

승리에 대한 지식

 그러면 승리주의적 정신에 대해 좀 더 면밀히 검토해 보자. 그것은 과연 무엇인가? 내가 보기에 핵심 단어는 정신(spirit)이다. 승리주의자는 그리스도의 승리는 확고히 믿는다. 그 믿음 자체는 잘못된 것이 아니다. 승리주의를 우려할 만한게 만드는 것은 기독교의 많은 프로그램 저변에 깔려 있는 정신이다.

 

 승리주의자가 어디에서 빗나가는지 알기 위해서는 먼저 그리스도가 이루신 승리의 사역에 관한 세 가지 기본 진리를 설명할 필요가 있다.

 첫째, 그리스도는 진정 죄를 이기고 승리하셨다.

 둘째, 그리스도의 추종자는 그분의 우주적 승리의 수혜자들이다.

 셋째, 우리는 삶으로 그리스도의 승리에 대한 확신을 증거해야 한다.

 

승리주의는 무엇이 문제인가?

 이것은 모든 그리스도인이 동의하지 않으면 안 되는 기본 진리다. 하지만 이 지점을 넘는 순간부터 승리주의 정신이 주도권을 잡기 시작할 수 있다. 이런 현상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승리에 대한 확신을 증거하는 최선의 길이 승리자의 전리품을 자기 것으로 주장하는 일이라고 생각할 때 발생한다. 다시 말하자면, 여기에서 잘못된 부분은 그리스도의 승리에 대한 확신을 증거하는 사람들의 정신과 관련되어 있다. 승리주의적 그리스도인은 승리의 열매에 초점을 맞춘다. 그 열매들을 자기 것으로 주장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이에 대한 대안은 무엇인가? 그리스도가 이루신 승리의 전리품을 요구하는 것이 그 승리에 대한 우리의 확신을 드러내는 적합한 수단이 아님을 인식하는 것이다. '예수님과 같이 되는 것'은 그 승리를 주장하며 나아가 우리에게 마땅히 속한 것을 넘겨받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 주님이 승리의 결과를 보장하셨다고 확신하는 가운데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애처로운 변장'

 테라사 수녀와의 대화에서 우리가 가난한 자 중에서도 가장 가난한 자를 바라볼 때 바로 '애처로운 변장'을 하고 있는 예수님을 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이다.

 

한 치 한 치의 땅을 차지하는 것

 테레사 수녀 역시 복음과 사회적 관심의 관계에 대한 내 사상에 영향을 미쳤다. 그 때문에 내가 아브라함 카이퍼를 포기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그가 테레사 수녀의 도움을 좀 받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테레사 수녀가 카이퍼의 선언문을 기쁘게 지지할 것이라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녀는 예수님이 죄를 정복하셨음을 알고 있다. 그녀는 궁극적인 십자가의 승리에 대한 깊은 믿음이 있다.

 

 그러나 테레사 수녀는 예수님이 구속하신 한 치 한 치를 우리가 지금 승리의 찬가를 부르며 우리의 상급으로 요구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녀가 확신하기로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 장소들을 우리의 것으로, '주장한다'는 것은, 그분이 고통받는 자의 고뇌를 자기 자신의 것으로 삼으시기에 우리도 나가서 '애처로운 변장'을 하고 있는 그분과 합류해야 함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카이퍼는 승리하신 왕 곧 권능으로 하늘의 보좌에 승천하신 왕에게 초점을 맞추기를 좋아했다. 테레사 수녀는 아직도 가난한 자와 억압받는 자 가운데서 고통받고 있는 우리의 구원자를 찾으라고 요청한다. 우리가 신념 있는 시민교양을 계발하려면 두 사람 모두에게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Comment_ 제12장에서는 승리의 사역에 관한 세 가지 기본 진리를 설명하고 있다. 첫째, 그리스도는 진정 죄를 이기고 승리하셨다. 둘째, 그리스도의 추종자는 그분의 우주적 승리의 수혜자들이다. 셋째, 우리는 삶으로 그리스도의 승리에 대한 확신을 증거해야 한다. 여기서 그리스도의 승리에 대한 확신을 증거하는 사람들이 승리의 열매에 초점을 맞춘다. 하지만 여기서 깨달아야 하는 것은 그리스도가 이루신 승리의 전리품을 요구하는 것이 그 승리에 대한 우리의 확신을 드러내는 적합한 수단이 아님을 인식하는 것이고 그것은 우리 주님이 승리의 결과를 보장하셨다고 확신하는 가운데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승리주의의 문제점을 명확하게 집어내어서 잘 지적해 내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이것은 그리스도가 사신 것이 나의 승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의 죄 때문이었음을 좀 더 고찰하고 승리를 만끽하는 것이 라니라 주변에 나의 이웃을 살펴보는 것이 그리스도인으로써 마땅하다고 가르침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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